목련잎이 떨어진 그 골목
2011. 4. 18. 22:33 ik ben
봄날
목련이란 꽃이 머릿속에 특별하게 인식된 건
군 제대 후 복학생이라는 무게감에
허한 마음을 안고 집 앞 골목을 들어선 늦은 봄밤이었다.
술기운 때문이었는지, 그날 따라 전봇대가 제대로 조명을 비춰주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
그 묘한 공간에서의 감정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게 했다.
마치 날 기다리고 있었던 하얀 손수건처럼.
애인을 보러 가듯 설레는 마음을 안고
매일 밤 그 골목의 목련을 만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건
봄비가 두어 번 내려 골목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떨어진 황갈색의 목련잎을 보고 나서였다.
매해 봄 뉴스는 벚꽃놀이에 시선을 두었지만
그 뒤로도 난 항상 그 골목을 걸었다.
'오늘은 반드시 내가 처음 봤던 그 목련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으리라'라는
다짐을 처음 본 날 이후로 수없이 매년 봄마다 하곤 했고
올해도 변함없는 뉴스의 벚꽃 얘기를 들었다.
오늘 그 거리엔
앙상한 가지에 조명도 없이 서 있는 나뭇가지들을 보았다.
비 오는 월요일은 카렌 카펜터뿐만 아니라 나를 우울하게 한다.
앞으로도 매년 조명 아래 핀 따뜻한 목련을 보러 갈 것이다.
두려운 건 목련이 지는 것이 아니라
앞으로도 계속 그 사진을 못 찍을 것 같은 하얀 자괴감이다.
여전히 가 아닌, 기억이 있는 한
난 항상 당신 편이다.
흠(HEUM) - 혼자 타는 시소
'ik ben' 카테고리의 다른 글
faber est suae quisque fortunae (0) | 2012.07.13 |
---|---|
阿難陀 (0) | 2012.02.07 |
'그립다...' (0) | 2011.11.01 |
sconosciuto (0) | 2011.07.29 |
얼골 (0) | 2011.03.17 |